'배를 납작하게'는 만능 큐가 아니다: 복부 끌어당김을 다시 보다
본문
매트에 누운 회원에게 우리는 거의 반사적으로 말한다. "배꼽을 등 쪽으로 끌어당기세요." 복부를 납작하게 집어넣는 이 신호는 한국 스튜디오에서도 거의 모든 수업의 출발점처럼 쓰인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이 "배 끌어당김"을 모든 회원에게 항상 적용하는 규칙으로 삼는 것이 과연 옳은지 묻는 연구들이 쌓이고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필라테스와 재활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한 전문가는, 건강한 사람의 동적 수업에서는 이 큐가 오히려 안정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1. 우리는 왜 배를 집어넣으라고 말해왔나
필라테스의 핵심 원리인 호흡과 센터링은 몸의 중심, 특히 요추와 골반 부위를 의식하도록 가르친다. 여기에서 출발해, 숨을 쓰면서 복벽을 안으로 끌어당겨 복횡근을 의식적으로 켜자는 지침이 자리를 잡았다. 영문 자료에서 이를 복부 끌어당김(ADIM) 또는 복부 할로잉(hollowing)이라 부른다. 의도 자체는 분명하다. 깊은 곳의 복횡근을 정확히 깨워 코어를 단단히 만들자는 것이다. 문제는 이 좋은 의도가 실제 수업의 동작들과 잘 맞물리느냐에 있다.
2. 복횡근을 따로 깨우려면 조용한 자리가 필요하다
복횡근은 이른바 국소 안정근이다. 느리게 지속적으로 켜지는 지근 섬유가 많고, 낮은 부하에서 은은하게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이 근육만 따로 재훈련하려면 정적인 자세, 낮은 부하, 그리고 압력 바이오피드백 같은 도구로 정확도를 확인하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것이 재활 분야의 합의다. 반대로 우리가 수업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동작은 동적이고 부하가 높은 코어 강화 과제다. 즉 복횡근을 따로 분리해 깨우기에 적합한 조건이 애초에 아니다. 피드백 없이 배만 힘껏 집어넣으면 의도와 달리 표면의 큰 근육들이 먼저 동원되고, 정작 깊은 안정근을 정밀하게 재훈련하려던 목표는 흐려진다. 깊은 코어는 본래 복압을 조절하며 은은하게 일하는 조직인데, 배를 억지로 납작하게 만드는 신호는 이 미세한 작동을 거친 수축으로 덮어 버리기 쉽다.
3. 의식적으로 당기면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신경해부학은 자세를 지키는 지근성 안정근이 대체로 무의식적, 반사적 경로로 조절된다고 본다. 그런데 이를 의식적으로 끌어당기려 하면 자연스러운 반응 타이밍을 오히려 끊을 수 있다. 코어 안정성 논의에서 자주 인용되는 한 견해는 복잡한 할로잉과 브레이싱을 훈련받은 사람일수록 그 습관을 권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까지 말한다. 게다가 복횡근을 강하게 당기면 수직으로 달리는 복직근과 일종의 경쟁 관계에 놓여, 고부하 동작에서 골반의 앞기울임을 제어하는 복직근의 역할이 약해질 수 있다. 실제로 레그 풀 프런트 같은 동작에서 배를 집어넣는 방식이 골반 회전 제어에 덜 효과적이었다는 보고도 있다. 산후 복직근 이개가 있는 회원에게는 끌어당김이 좌우 간격을 더 벌릴 수 있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4. 전통이라는 이유만으로
원래 방식대로 해야 진짜 필라테스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필라테스는 초기 제자들이 각자의 스튜디오를 열며 끊임없이 변형되고 확장되어 온 방법이다. 원저자도 새로운 근거가 쌓이면 기꺼이 통합하는 것이 이 운동을 오래 살아 있게 만든다고 본다. 끌어당김 큐를 무조건 버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회원에게 모든 순간 적용하는 기본 규칙으로 삼지는 말자는 제안이다.
실전 적용
내일 수업에서는 동작의 성격을 먼저 가늠해 보자. 리포머 풋워크나 플랭크처럼 부하가 높은 동적 동작에서는 "배를 집어넣으세요" 대신 "숨을 옆구리로 넓게 쉬면서 몸통을 길게" 같은 신호로 자연스러운 코어 반응을 살려 준다. 반면 요통 회복기 회원이나 복횡근 인지가 약한 분께는, 누운 자세에서 낮은 강도로 손끝 촉지나 호흡을 활용해 분리 훈련을 따로 배정한다. 산후나 복직근 이개가 있는 회원에게는 강한 끌어당김 대신 부드러운 연결 신호를 쓰고, 좌우 간격이 벌어지는 느낌이 없는지 함께 확인한다. 같은 "코어를 쓰세요"라도 동작과 사람에 따라 다른 말이 필요하다.
마무리
배를 집어넣으라는 한마디는 만능 열쇠가 아니라 상황에 맞춰 골라 쓰는 여러 도구 중 하나다. 오늘 당신의 수업에서 이 큐는 정말 그 동작에 필요한 신호였는지, 한 번쯤 되물어 보면 어떨까.
참고: We should not keep drawing-in the abdominal wall during the Pilates classes. Part I — The Pilates Journal (Julio C. Aragon Salamanca) · 원문 보기
※ 본 글은 위 원문을 바탕으로 한국 필라테스 강사·원장 분들에게 맞게 재구성한 칼럼입니다. 원문 그대로의 번역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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